1990년 고3 교실
덥고 습한 날씨가 이어진다.
다들 날씨때문에 힘들때지만 특히나
입시를 앞둔 수험생들이 더 힘들 것 같다.
그래도 지금은 에어컨 시설이 잘 되어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잠시 1990년 내가 고3이던 시절, 그 교실을 생각나는 대로 추억해본다.
학기초부터 거의 밤 12시까지 자율학습이 이어졌다.
주말이고 휴일이고 없이 학교에 가야했다.
목표는 단 하나, 대학진학,
학교는 학교대로 어떻게든 진학률을 높이려는 것이었을테고.
전인교육, 학생 인권, 이런것들은 먼나라 이야기였고
마치 군대처럼 강압적으로 몰아붙이는 날들이었다.
에어컨은 아직 어불성설이던 시절,
앞뒤로 돌아가던 두대의 선풍기가 고작이었다.
그리고 학급당 학생수는 아직 60명에 육박하더 시절이었다.
매달 이어지는 모의고사,
성적표가 도착하는 날은 각 반마다 매타작(?)이 이어지고
학생들은 체육복을 끼어입으며 그 날에 대비했다.
지긋지긋한 보충수업, 자율학습
종종 자퇴자가 발생하고, 전학자도 나오던 그때 그 시절.
그러나
피끓는 청춘들, 아무리 억압하고 몰아붙여도
그 속에서 할건 또 다 하며 살았다.
돌아보면
힘들기만 했던 시절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ㅎㅎ
미팅도 하고 연애도 하고
영화도 많이 보러다니고 음악도 많이 듣고
만화도 많이 보고, 소설도 많이 읽고 말이다.
가령
조금 빨리 끝나는 날이나, 어쩌다 쉬는 주말때,
혹은 그냥 자율학습을 댕땡이 치고 본 그 시절 영화들로
조디 포스터의 <피고인>, 그 유명한 <사랑과 영혼>, <폭풍의 질주>,
김인문, 최유라의 <수탉>, 한창 잘나가던 심혜진의 <물의 나라> 같은
미성년불가 영화도 많이 봤다. <정전자>, <첩혈쌍웅>, <용호풍운> 같은 홍콩영화에도 열광했다.
12시까지 이어지던 자습시간,
신필 김용의 <영웅문>을 보며 시간가는 줄 몰랐고
<드래곤볼>같은 만화,
이문열의 <삼국지>, 최인호의 <불새>같은 소설도 기억난다.
그리고 감독선생님 몰래
마이마이에 이어폰을 꼽고
변진섭, 이승철, 김민우, 조정현, 이선희, 푸른하늘, 동물원 등등
각자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었고
별밤, 밤을 잊은 그대에게 같은 라디오를 들으며 감성을 키웠다. ㅎㅎ
요즘말로 썸을 타던 이웃학교 여학생에게
편지를 쓰며 자율학습 시간을 버텨내기도 했다.
밤 12시,
드디어 자율학습이 끝나면
우르르 학생들이 나오고
교문 앞에는
수많은 봉고차들이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내버스가 이미 끊긴 경우가 많고
멀리 살거나 기타 등등의 이유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 봉고차를 구해 함께 타고 다녔다. 그런 시절이었다.
남녀 학생들은 서로 편지를 전하기도 하고
음료를 건네기도 하고 그랬다.
다 정겨운 기억들이다.
함께 추억을 공유한 친구들,
다들 잘 살고 있길 기원한다.